국수라는 음식을 처음 먹어보고 그 맛을 절대로 잊을 수 있었던 기억이 있다. 어려서 주인집 할아버지의 환갑날. 당시에는 60세 이상을 생존해 있는 것이 온 동네가 축하해 줄 경사였기에 환갑잔치를 성대하게 치르던 시절이었다. 축음기에서 들리는 김희갑, 김추자, 이미자, 김정구 씨의 노래가 온 동네에 울려 퍼지는 아침에 동네 어린 꼬마였던 나는 친구들과 함께 음악소리에 빨려 들어 멍석이 펼쳐진 마당에 도착한다.
수돗가(당시에는 지하수를 이용한 자가 수도시설이 대부분이었다.)에는 연신 삶아내는 국수를 헹구느라 동네 아줌마들의 손이 쉴 새 없이 움직인다. 하나둘씩 국수 뭉치들이 대소쿠리를 돌아가며 쌓여가는 모습을 보노라면 괜히 흐뭇해지고 기분이 좋아진다.
얘들아, 어여와서 국수 먹어! 현철아, 이 놈아 배고픈데 국수 먹고 놀아~
멍석 위에 펼쳐져있는 잔치상들을 보면서 설레는 마음을 주체할 수가 없다. 이리저리 몰려다니며 상 위의 약과, 과줄을 먹으면서 '후루룩' 소리를 내면서 한 움큼 가득 국수를 젓가락으로 집어서 입에 넣은 아저씨들의 모습이 어찌나 맛있어 보이던지 단숨에 국수를 헹구어내던 아줌마의 얼굴을 보며 "나미 아줌마, 국수 주세요!" 한다.
흰색, 노란색 계란지단과 당근 채, 파, 양파가 올려지고 김치를 잘게 썰어 참기름과 깨소금으로 버무린 고명을 올려주며 "맛있게 먹어~!"라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던 동네 아주머니. 아이들과 한 사발씩 받아서 멍석 위의 한 귀퉁이 차지하고 빙 둘러앉아 목이 메도록 먹었던 잔치국수의 맛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잔치마당에서 실제로 먹을 수 있는 기회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때의 설렘이 많이 사라진 중년의 아빠가 된 세월의 탓이 더 크기 때문일 게다. 아무튼, 국수라는 것을 처음 보았던 나의 기억은 이렇다.
며칠 전에 비가 내리고 으스스한 날씨 탓인지 따끈한 국물을 곁들인 잔치국수 생각이 났다. 두 아이를 대학생으로 다 키운 중년의 아빠이다 보니 웬만한 음식 만들기는 거나 흉내를 낼 수 있다. 벌써 서당개 23년 차다. 이젠 아이들도 스산한 기운이 느껴지면 잔치국수 주문을 스스럼없이 아빠에게 한다. 귀찮지만 어쩌겠나? 투덜대며 주방으로 가는 수밖에...
그냥 냉장고에 널브러져있는 채소들을 집합시켜 활용하면 좋다. 이렇게 채를 썰어서 준비해 놓은 후 국물을 준비한다.
★잔치국수 국물 TIP #1
- 멸치액젓을 세 숟가락 정도 (적으면 한 술 더) 넣고 물을 끓인다.
- 멸치가루를 준비해 두었다가 2숟가락 정도를 넣고 더 끓여준다.
- 소고기 다시다로 부드러운 맛을 내준다.(1 숟가락)
★잔치국수 국물 TIP #2
- 무 조금(2센티 두께) 1조각
- 멸치 몇 마리(아무 멸치나 다 된다.)
- 양파 반 조각, 사과 1/4개, 다시마 8㎠, 표고버섯 가루 1숟가락
- 넣고 팔팔 끓이다 가쓰오장국을 간을 맞추면서 넣어주면서 5분 정도 끓여준다.
첫 번째는 노포에서 판매하는 잔치국수 기본 베이스이고, 두 번째는 내가 막 끓여주는 방식이다. 굳이 맛을 비교하자면 호불호가 갈리므로 우열을 가리는 것을 피하겠다.
중요한 건 국수의 양을 아직 잘 모르겠다. 도대체 얼마나 넣어야 몇 인분인지? 동전 크기로 넣으면 항상 부족한 듯하고 더 넣으면 두 뭉탱이씩 남고. 요거 어렵다. 하여간 취향에 따라서 김치를 참기름에 버무려서 고명으로 얹은 후 싱거우면 양념간장 조금 넣으면 잔치국수 완성되시겠다. 이것은 가족을 위한 가치소비다. 그래서 행복하다.
따스하고 구수한 멸치국물 맛이 어린 시절의 추억을 생각나게 한다. 글을 다 쓰고 보니 계란 풀어서 넣는 것을 까먹었네. 계란 2개를 잘 풀어서 국물이 막 끓을 때 넣어주면 맑은 장국이 되고 요렇게 국수 위에 얹어주면 장식도 예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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